2019 ‘신비하고 기이한 창고, 걸어서 북서울 꿈의 숲으로’ 전시안내 – 그것의 미래는 그 어떤 예측도 할 수 없는 비결정성에 속한다. 생각과 행위‘신비하고 기이한 창고, 걸어서 북서울 꿈의 숲’ 프로그램은 숲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들이 길을 통해 만나지는 거주지 주변의 숲길, 도로변, 

Exhibition Info

2019.10.25 – 11.3
Dream Forest Art Center 1F
Opening 2019.10.25 5pm

Art of Work
아트오브웍  | 이은종

그것의 미래는 그 어떤 예측도 할 수 없는 비결정성에 속한다. 생각과 행위의 사이에서 부여되는 그것을 실천할 때 비로소 자기만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연습을 할 수 있게 된다. 그 무엇 인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문자나 언어 보다 더 시각적인 측면이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찍는다는 행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내면성의 차원에서 보여 지고 읽혀져 스스로 독립해야 한다. 이미지는 자신의 고유한 생산 속에서 스스로 드러나는 사실을 감지하고 인지하게 되며, 생각한 한계점들을 지우면서 하나의 방식을 찾게 된다.  

‘신비하고 기이한 창고, 걸어서 북서울 꿈의 숲’ 프로그램은 숲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들이 길을 통해 만나지는 거주지 주변의 숲길, 도로변, 산책로, 둑에서 만나게 되는 풍경들을 개별적인 관심과 반복된 관찰을 통해 사진으로 이야기 한다. 주변 숲에서 일어나는 생태, 자연 환경들의 변화들은 개인이 자연으로부터의 고립감이나 고밀도 주거 형태의 획일적이고 날선 고층 건물에서 벗어나 자연과 어떠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이다. 또한 숲을 경계로 만나는 지역은 안과 바깥을 연결해주는 일상적이고도 연속적이며, 시간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영역 사이를 완화시키거나 정치·사회적 차원에서 동일시 할 수 없는 개념을 갖게도 한다. 도로의 리듬에 따라 펼쳐지는 아파트와, 역사 속에서 만난 듯한 오래된 기와지붕, 층층마다 화단이 놓인 빌라, 퍼포먼스를 연상하듯 거리위에 펼쳐놓은 물건을 파는 여자, 어스름한 새벽녘의 도로변, 마천루를 연상하듯 밀려오는 빌딩들은 일상 주변에서 만나는 풍경들이다.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던 공간이나 뻣뻣하게 드러나 있던 건물도 어떤 장소에서 프레임을 구성하느냐에 따라 그 분위기가 다르고 해석의 의미작용이 달라진다. 이미지는 개인의 내적 감각들이 이미지화되면서 우리의 관계는 서로가 연루되어 과거가 언제나 현재를 의미하듯 흔적의 작용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를 사유하게 한다. 작품들은 하나의 은유이자, 현재이고, 새로운 상황들을 표현하고 시간들 속에서 만들어지는 광경이다. 프로그램을 진행함에 따라 나의 외부와 나를 연결하는 그것의 작용에 따라 나의 ‘고유한 것, 가까이 있는 것,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한 의식들을 감각적인 것과 지성적인 것으로부터 끌어내어 ‘자연과 예술’, ‘자연과 지역’이 밀접하게 결속되어 있는 것을 자신의 지시체로 현실화시키actualisation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창작물로 인해 사유되고 말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국한되는 것을 넘어서 보다 구체적인 의미를 포함하게 된다. 이미지는 흔적의 구조를 통해 현재를 둘러싸고 있는 나의 위치를 기록하는 것이다.

구재형 | HOPE | pigment print, 50.8×61cm, 2019

구재형

사진 촬영을 하다가 우연히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형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한곳에 머물고 있는 한 쌍의 학과 세월의 흐름이 멈춰있는 현재 나의 모습과 닮아 보여서 사진을 찍었다. 촬영한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들어 ‘신비하고 기이한 창고, 걸어서 북서울 꿈의 숲‘ 프로그램에 작품을 내기로 했다.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과 사진을 보는 다른 분들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이 작품을 봐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진을 배우는 과정은 좀 힘이 든다. 모르는 단어와 색감, 농도 등 낯선 카메라 기능들을 익히고, 실제 촬영에 응용하는 것이 어렵지만, 하나하나 배우는 과정도 또한 재미있다. 나도 언젠가는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날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나름대로 열심히 하게 된다. 앞으로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 새로운 것들을 사진 속에 담아 보고 싶다. 오늘도 아침부터 나의 주변에서 어떤 대상을 찾을지 부지런히 걷는다.

세화
세화 | Decalcomanie | pigment print, 50.8×61cm, 2019

세화

무심코 걷다 우연히 내려다본 곳에 닮은 형태의 두 그루의 가로수가 있다. 각기 따로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작은 연립주택 담벼락을 모두 가리고 서 있는 모습이 데칼코마니이다. 똑같은 형태의 건축물 속에서 똑같은 이유로 길게 나열하듯 심어져 같은 나날을 살지만, 이성의 세계에 무의식의 세계가 존재하듯 자신의 본성에 따라 이기적으로 자라는 모습은 아무리 문명이 손을 대도 어쩔 수 없는 태고의 본능이기에 경이로움 마저 느껴진다. 주변 환경과 불가분의 관계에 의하여 형성된 길이라는 공간에 여러 가지의 이유로 인위적으로 심어졌지만, 나뭇가지 밑으로 만들어진 그늘은 무더위에 지친 이들에게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 주기에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다. 오래된 시간 속에 사람들과 함께 해 온 가로수들은 제자리에서 자신의 소명에 따라 살아갈 테지만 자연이기에 본연의 모습이 드러남은 어쩔 수 없는 당연한 섭리이자 이치이다.

정상일 | 회복 | pigment print, 50.8×61cm, 2019

정상일 

내게는 다양한 삶의 길이 있었다. 그 다양한 길 가운데 ‘아트 오브 웍’ 프로그램에서 진행한 ‘신비하고 기이한 창고, 걸어서 북서울 꿈의 숲’을 통해 전혀 걸어보지 않았던 사진의 길을 걷게 되었다. 매주 북서울 꿈의 숲을 향하여 오르내렸던 길, 그 길가에 나란히 놓여 있는 두 벤치를 보는 순간 마치 나 자신이 벤치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은 렌즈에 담겨진 이미지를 통해서 너무도 크게 내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바쁘게 달려온 시간 가운데 이제는 쉼이 필요한 듯이 아무도 없는 벤치에 앉아 지나온 삶을 관조하며 재충전을 하고 또 다른 시간을 향하여 좁은 길로 나아가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삶이라고 하는 것이 모두 자신의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듯이, 전혀 경험해보지 않았던 이 길이 두렵기도 하지만 또한 즐겁다. 그리고 훨씬 많은 기대를 안고 나아간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우리 부부의 삶을 담을 뿐 아니라, 우리의 소박한 미래를 그릴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

Scarlett | 초록멜로디 | pigment print, 50.8×61cm, 2019

Scarlett

나만의 감성으로 촬영하고자 며칠을 기다려 비 오는 아침 북서울 꿈의 숲으로 나선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걷는 한적한 숲길은 물안개에 싸여 다른 차원의 문을 만들고 미지의 세계로 인도한다. 소나무 잎에 맺힌 물방울은 유혹하듯 보석처럼 빛나고 초록의 나무들은 윤기를 더하며 건강미를 뽐내고 있다. 이곳저곳 사진을 촬영하며 눈길을 끄는 옥상 정원에 다다랐다. 멀리 바라보이는 강북구의 모습이 빗물에 젖은 나무 길과 꽃밭과 함께 아련하고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주어 발길을 붙잡는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떨어지는 빗소리도 멜로디가 되고 나무 향에 배어 퍼지는 물 향기도 나에게만 허락된 거 같아 이 공간에 매료된다. 인공적으로 조성되기는 하였지만 꿈의 숲에서 찾고자 했던 비 오는 날의 운치와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어 기쁘게 작업을 하고 돌아선다.

박인희 | 도시골 | pigment print, 50.8×61cm, 2019

박인희

도시에서 부산한 일상을 살고 있지만 언제나 평안하고 유유 자족한 삶을 꿈꾼다. 폭우로 큰물이 지나가고 나면 맑아진 집 앞의 우이천은 자연 놀이터가 된다. 한여름 계곡에서 한가롭게 물놀이하는 모녀는 여여하다. 서울이지만 산과 계곡을 끼고 있는 도시골에 살고 있는 작은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도시와 시골이 합쳐진 말 ‘도시골’은 자연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단순하고 여유롭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다. 모든 것이 갖춰지고 편리하지만 복잡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터를 긍정하고 이대로 좋다는 마음으로 지금 머무르는 곳을 사랑하게 된다. 지친 도시 생활에서 잠시 비껴나서 흐르는 물살에 마음을 내려 놓아본다.

이태희 | 미래구역 9-1 | pigment print, 50.8×61cm, 2019

이태희

유년시절 돌산을 가기 위해 지나야 했던 그 동네는 허름한 집들과 제법 번듯한 벽돌 주택들이 공존 하는 미아사거리와는 아주 가깝지만 느낌은 많이 다른 곳이었다. 봄이 되면 쑥을 캐거나 진달래, 개나리 꽃구경을 하기도 하고 이름도 모르고 바위가 많아 그저 돌산이라 부르던 뒷산에 오르곤 했다. 중학생이었던 80년대 후반 드림랜드라는 놀이 공원이 들어서더니 오랜 시간이 지나 현재의 ‘북서울 꿈의 숲’이 조성돼 주변이 재개발되면서 사진 속 삼거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가끔 운동을 하러 가거나 사진 수업을 위해 지나다 보면 개발을 기다리는 주변 모습에 비해 완전히 변해버린 그 구역의 모습은 미래의 도시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전깃줄과 통신선들만이 개발에도 어쩌지 못한 옛 모습이다.

문동식 | 주차 | pigment print, 50.8×61cm, 2019

문동식

주차금지 표지는 우리나라 어느 곳을 가나 도로변을 장식하고 있고 주차금지 문제로 인한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건물주들은 자기 건물 옆에 다른 사람들이 주차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형태의 주차 방해를 위한 집기, 돌, 안내판 등을 설치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으로 집 없는 세입자들은 주차장을 확보하지 못해서 도로변 곳곳에 불법으로 주차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이러한 불법 주차는 이웃 간의 싸움으로 번져 큰 사고까지 이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인들의 차량 소유는 급증하며 이웃 간의 주차에 따른 분쟁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이제는 우리 사회의 최고의 가치를 공동체 회복에 두고 이웃 간에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의 작은 불편은 양보하는 더불어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웃 간의 다툼은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발생하게 하고 공동체를 파괴하게 한다. 나부터 내 가정에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양보하는 풍조를 만들어간다면 머지않아 우리 사회에 전통적인 미풍양속인 공동체 의식이 회복될 것이다.

 
변은숙 | 공존-지금 여기 | pigment print, 50.8×61cm, 2019

변은숙

사진을 촬영한다는 것은 그 순간을, 그 장소의 모습을 그대로 멈춰놓는 행위이다. 그 단순한 행위에 행위자의 마음이 담기고, 생각이 표현되고, 사상이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한 사람을 온전히 드러내는 작업이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 촬영할 수도 있지만 결과물을 보고 난 후에 알아차릴 수도 있다. 또한 촬영한 사람의 의도와는 달리 보는 사람에 의해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 사진을 촬영하는 일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 멈춰진 장면에 시간이 흐른다. 생각으로 실상으로 그 흐름을 느낄 수 있다. 멈춰있는 것은 단 한순간도 없음을 알아차릴 때의 투명함은 곧 흐름을 인정하지 않던 무지의 시간들이 얼마나 허망한 순간들인지를 알게 한다. 지나가는 것임을 알면서도 잡으려 하는 어리석음을 본다. 한 공간에 담겨있는 변화의 흔적은 그것이 순리임을 보여준다. 그렇게 존재함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는 데 보지 못하는 오만이 무겁게 다가온다. 과거· 현재· 미래라고 부르는 모습이 같은 공간에 담겨 있다. 실은 본래부터 단 한순간도 나뉜 적이 없었다. 카메라는 그렇게 세상을 보여준다. 세상의 실제를 알게 하고 그로인해 이전에 알고 있었던 세계가 허상임을 또한 알게 한다.

김효열 | 그 곳, 2019 | pigment print, 50.8×61cm, 2019

김효열

나는 동대문구에서 태어나 자랐고 떠났다가 은퇴하고 다시 돌아와 산다. 서울내기는 고향이 없다는 생각으로 별 애착이 없었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 다시 돌아와 느긋한 시간과 시선으로 옛 동네를 새롭게 만나니 옛 감각이 나의 생각과 기호로 일상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었음을 확인한다. 동대문은 오래전부터 현재까지 엄청난 상가지역이고 숭인동과 창신동은 지형상 생활상 동대문을 바라보고 발달한 배후지역의 성격을 띤다. 그간 동대문 상권은 계속 번창한 반면 숭인동과 창신동은 어설픈 지하로 옥상과 옥탑으로 언덕 위로 무질서하게 파고들고 기어오르며 정비할 수 없는 미로로 발달했다. 어지러운 혼돈 속, 어쩌다 틈새에 남겨진 옛 모습들은 애잔하게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 8월 여름이 아직 뜨겁지만 끝나가는 햇살과 그림자가 적당했다. 한참 경사로를 오르다가 겨우 남겨진 낙산의 초록 정수리 직전, 오래된 집, 왕성함이 두려웠을까, 말라버린 담쟁이의 마른 줄기를 달고 또 얼키설키 덧붙여 작업 공간을 만든 판넬 벽이 어설프면서도 굳건하다. 축대, 비탈길, 계단 그리고 벽. 내일도 살아내야 하므로 견고히 단도리 하는 의지의 표상 위로 끝없을 푸른 하늘, 국경도 짐도 없는 표표한 흰 구름이 무상하다.

안정옥 | 그곳 | pigment print, 50.8×61cm, 2019

안정옥

어린 시절 꿈꾸었던 나만의 아지트, 친구 집 세모난 지붕 밑 조그만 다락방은 귀찮게 하는 동생들도 잔소리하는 엄마 눈도 피해 맘껏 떠들고 놀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곳 이었다. 따듯한 햇살을 받고 있던 갈색 벽돌집의 세모 지붕이 내 눈에 들어왔다. 오래되 보이지만 온기를 머금은 색상의 외벽과 좁지만 담 안 밖으로 잘 가꾸어져 있는 그 시절 누구나 살아보고 싶어 했던 그런 양옥집이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가족들의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그곳이 동네 끝자락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주변의 재개발에도 아직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던 그 동네가 그 집이 반가웠다.

희유 | 기억의 구도 | pigment print, 50.8×61cm, 2019

희유

길을 가다 우연히 본 가게 앞에 걸음이 멈춰졌다. 가게의 유리면에 붙여져 있는 필림, 테프, 확대사진 써비스, 필름현상 등의 스티커 글귀들은 이미 용도 폐기된 어떤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그 낱말들이 통용되었던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을 한순간에 열어 제낀다. 대부분의 단어들에서 지나간 추억이 떠오르는 동시에 지금은 거의 활용되지 않는 작업이 연상된다. 마치 철 지난 해수욕장에 붙은 글귀처럼 썰렁함마저도 느껴진다. 주인은 무슨 생각으로 스티커를 제거하지 않은 것일까. 단지 게을러서라고 하기 에는 진한 여운이 남는 공간으로 다가온다.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향수, 아련함, 아쉬움 등으로 표현되는 감정이 스며든다. 한 장의 사진이 수많은 장면들과 사람, 상황을 떠오르게 한다. 한순간에 섬광처럼 이런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게 사진 말고 또 뭐가 있을까. 마치 타임캡슐처럼 순간을 그대로 담아둔 사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진은 그 의미를 해석해 줄 말도 번역해 줄 통역도 필요치가 않다. 보는 순간 그냥 알게 되고 영감을 준다. 잠자던 오감을 깨우고 닫혀있던 마음도 열리게 한다.

 
이진영 | Below | pigment print, 50.8×61cm, 2019

이진영

한정된 공간에서 계단으로, 엘리베이터로, 에스컬레이터로, 때론 수평적 걸음으로 하루가 번져간다. 인공 빛이 비추고 벽이 세워진 사이 공간만큼 볼 수 있고, 팔과 다리를 움직여 걸으며 무심하고 기계화된 걸음을 촉진하는 도시의 바닥이 친숙하다. 아래에서 더 아래로 내려갈 때의 어둠이 차가우면서도 시원하다. 도시에서 여유 공간을 찾기도 하고, 비슷한 모양과 색감이 반복되는 패턴화된 건물을 관찰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건물의 끄트머리가 조형적으로 자리 잡고 있어 하늘과 건물의 관계가 감각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더 멀리 더 높게 보는 것이 낯설고, 눈앞과 발아래 저 깊숙한 아래에서 연결된 세상의 맥을 따라가며 걷는다. 도시는 지하 세계의 습하고 컴컴하고 쾌쾌한 데에서 더 깊은 에너지로 움직인다. 울퉁불퉁한 지면은 건강한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사람에게 허락된 땅 같고, 강한 엔진으로 힘을 발사하는 탈 것에게 유리한 땅 같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기계화된 에너지들이 강렬한 뿌리로 퍼져간다. 하늘에 닿으려는 허상은 소수의 몫이며, 다수는 아래로 저 아래로 향하여 습도로 불쾌하고 마주치며 인상을 쓰고 빠르고 적당하게 거리를 두면서 연결된다.

임은숙 | 얼음땡 #305 | pigment print, 50.8×61cm, 2019
임은숙 | 얼음땡 #209 | pigment print, 50.8×61cm, 2019

임은숙

어느 집 베란다에 박이 열려있는 모습을 보니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다. 서울 도심에서 박을 보는 게 쉽지는 않다. 그것도 베란다에서. 도심의 길들은 아스팔트, 보도블럭으로 다 덮여 흙을 찾아보기 힘들어 지고, 땅 속에 뿌리를 내려야 할 식물들이 하얀 스트로 폼, 고무대야, 파란 화분 속으로 이주를 해야 했다. 그것도 여의치 않아 베란다 옥상으로 자리를 옮겨 다닌다. 도심 속에 우리들의 삶을 보는 듯하다. 사진 속에 아파트 들이 밀려오면 저 박이 자리를 비워 줘야 하듯 우리도 떠나 줘야 하는 것이다. 씁쓸한 서울의 오늘이다. 제비들이 박 씨라도 많이 가져와 아파트들이 오지 못하게 도시 구석구석 탐스러움과 부로 가득 메워 주었으면 좋겠다. 사진이라는 작업을 통해 도심 속에 서민들의 애환을 이야기 하고 싶고, 그들과 함께 우리들의 영역을 지켜 가도록 아름다움을 표현 하고 싶다.

사진에는 1960년대에서 2000년대가 공존 한다. 재개발을 앞두고 담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문만이 버젓이 서 있는 곳, 지붕은 타이어에 의존해 겨우 날아가지 않을 정도로 덮여있다. 그 뒤로 빨간 벽돌의 3층 건물, 그 너머에는 상가 건물과 아파트들 이들은 이렇게 어우러져 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재개발 재건축이 아파트로 향해 가는 서울의 현 모습을 보는 듯하다. 사각의 성냥곽에 우리들을 묶어 놓는 것은 아닌지? 조금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들의 정을 담아 낼 수 있는 도시를 꿈 꿔 본다. 사진 속에 대추나무가 그 자리에서 더 많은 열매를 맺으며 오가는 이에게 살포시 웃음을 안겨주면 좋겠다. 나 또한 주택 속에 숨겨진 잔잔한 멋을 사진이라는 작업으로 기록한다.

박혜순 | 담다 | pigment print, 50.8×61cm, 2019

박혜순

미아사거리에서 15분쯤 걷다 보면 ‘북서울 꿈의 숲’이 나온다. 가는 길 위에는 많은 사람과 꽃과 돌, 나무 등이 이야기를 한다. 미아사거리는 고가다리가 철거되면서 대형백화점이 세워 지고 변화가 생겼지만 재래시장과 노점상은 여전하다. 조그만 바구니에 이것저것 채소를 놓고 팔거나, 꽈배기, 찹쌀 도너츠 등을 즉석에서 만들어 팔고, 옥수수와 번데기를 팔기도 한다. 어느 더운 여름날 많은 사람들이 물밀듯이 스쳐 지나가는 지하철역 주변에서, 검은 썬 캡을 쓰고 빨간 양산을 쓴 채 꼿꼿이 서서, 천 원짜리 수세미를 파는 여인을 발견했다. 손수레 가방 옆에 알록달록한 실로 짠 수세미가 뜨겁다. 바쁘게 지나간 사람들 속에 혼자 서 있는 모습이 현대인의 외로움을 대변해 주는듯해서 셔터를 누른다.

이현주 | Standpoint | pigment print, 50.8×61cm, 2019

이현주

가로수 뒤에 얼굴이 가려진 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의 팔과 다리만 보인다. 사라져가는 유물과 같은 공중전화 박스가 눈에 밟히고 등 뒤로 무엇을 지키듯 ‘어디 올 테면 와 봐라’ 하는 식의 몸짓이다. 고개를 숙이고 가상의 세계 속에서 소통하는 이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거리의 간판은 온통 붉은색으로 도배를 하고 도시를 어지럽힌다. 신호등의 빨간 등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다시는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해 가고 있는 스마트 시대에 멈출 것을 요구하며 경고등을 켜는 듯하다. 현재의 강북도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다. 오래된 단층의 주택과 연립주택을 허물고 도시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골목 입구마다 있던 작은 슈퍼와 시장은 사라지고 주차장을 완비한 커다란 마트가 건설된다. 그 와중에 생태를 품고 있는 정비된 우이천과 말 그대로 랜드에서 숲으로 변모한 꿈의 숲은 도시의 변화 속에서 신호등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장소가 된다.

윤석경 | 가는길 | pigment print, 50.8×61cm, 2019

윤석경

함께 나란히 혹은 독립된 자기만의 색깔을 갖고 개성을 펼쳐나가는 우리 부부처럼 쭉쭉 뻗어나가는 자동차 도로와 자동차가 한 공간에 있다. 노란 중앙 실선과 하얀 점선의 선들이 서로 자랑하듯 길게 뻗어있고 검정 아스팔트와 빨간 보도 색깔은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은회색 담벼락과 그 벽을 타고 넘어가는 푸른 넝쿨들이 함께 어우러져있는 양 옆으로는 한창 진초록으로 가득한 가로수들과 이른 아침이라 아직은 할 일을 찾지 못한 외로운 가로등들이 함께 공존한다. 무뚝뚝한 전봇대와 그 위에 전깃줄들이 성품 좋게 길게 늘어져 있으며, 더 없이 높은 파란 하늘과 그 보다는 조금 낮은 새로 건설된 초고층아파트들, 저 멀리서 늘 변함없이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는 푸르딩딩한 옷을 입은 당당한 산등성이가 따로 또 같이 늘 함께 동행 하는 우리 부부처럼 정겹고 사랑스럽다.

김윤영 | 자리하다 | pigment print, 50.8×61cm, 2019

김윤영

언젠가 묘비를 붙잡고 슬프게 우는 여인의 사진을 봤는데 그 여인의 눈물이 너무나 강하게 다가와 오랫동안 봤던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 사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하게 됐고 사진 수업에서 자신만의 로드맵을 정하라고 했을 때 우이동을 선택한 이유가 된 것 같다. 이른 아침 가까이에 있지만 바쁜 일상과 묘지라는 특성이 주는 망설임으로 가보지 못한 민주묘지로 향했다. 잘 가꾸어진 조경과 그늘에서 쉬고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민주묘지의 조형물들은 존재의 이유가 분명하므로 사진으로 촬영하는 데에 따른 두려움이 있다. 사진은 내용과 조형성이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어서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담는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중앙에 위치한 ‘사월학생혁명기념탑’이 시선에 들어온다. 푸른 산자락을 세로로 자르듯 웅비하게 솟아 있는 모습이 그날의 의분을 말해주는 듯하다. 욕심을 내본다. 일곱 탑주의 기상을 자연과 조화롭게 담고 싶어 앵글을 잡는다.

김혜정 | 말 거는 나무 #28 | pigment print, 50.8×61cm, 2019

김혜정

어미 새가 알을 품고 부화 시키는 과정과도 같이 알 속의 아기 새와 함께한 인고의 시간들은 의미 있는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바쁜 일상에서 이루어진 사진 작업은 오히려 심적으로 위로를 주었다.
사물과 풍광에 편안한 눈길을 멈추게 하여 고목의 연륜과 새싹의 생생함의 숨결을 함께 느끼고 흡수하며, 장면을 담으려 셔터를 누르는 그 집중의 순간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준다.도시의 나무들은 숲속의 나무들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편리나 기호에 맞게 잘려져 가꾸어 지고 있다. 이 고목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인공적으로 잘려나간 모습이 앵글의 오른쪽은 나뭇가지를 뻗치고 있지만 한 방향은 뭉툭하게 잘려져 있다. 나무껍질도 벗겨져서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도 보기 흉하다는 생각보다는 마음에 뭉클한 울림이 있어, 사진을 촬영하면서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자문을 한다. 커다란 고목이 아파트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빌딩 숲에 살며 보기 흉하게 잘려져 나가면서도 묵묵하게 싹을 틔우고 있는 모습이 마음 아프다. 고단하게 살면서도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며 그늘을 만들어 쉼을 주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가자고 위로를 주는 거 같아 고마움이 느껴진다.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해서 고향도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오랜 세월 한 자리에 살아가는 나무만큼 마음을 정화하며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힘을 가진 것도 없다. 그래서 뷰파인더로 바라본 고목이 아름답다.